Ⅰ. 태양을 선택한 나라, 독일을 가다

세계는 이미 태양광 시대

태양 에너지에 대해 당신이 알아야 할 것들

  • 아이슬란드 100%
  • 미국 17%
  • 스위스 62.5%
  • 이탈리아 35.6%
  • 영국 29.7%
  • 대한민국 3.5%

    20년 째 한국의 재생에너지 비율은 OECD 최하위

※ 출처: Iea, Renewables Information 2018

태양광 발전은 ‘미래의 에너지’가 아니다. 바로 지금,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현재의 에너지’다.
무한하고 깨끗한 태양광 발전은 인류의 삶을 크게 바꾸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태양광을 비롯한 재생에너지 비율은 20년째 OECD 최하위.
전 세계가 뛰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중앙일보 이노베이션랩은 디지털 기획 콘텐트로 태양광 발전을 집중 조명한다.

태양을 선택한 나라, 독일을 가다

CHAPTER 1.

독일은 어떻게 ‘에너지’를 바꿨을까

CHAPTER 1.

독일은 어떻게
‘에너지’를 바꿨을까

독일에는 사람의 성격을 나타내는 단어 가운데 ‘환경친화적 (Umwelt freundlich)’이란 표현이 있다. “그 사람 굉장히 환경친화적이야!” 이 말은 어디서나 큰 칭찬으로 통한다. 이같은 정서와 철학은 독일이 신재생에너지 강국이 된 밑바탕이다.

독일 경제에너지부에 따르면 2018년 상반기 독일에서 생산된 전체 전력 중 태양광·풍력·바이오매스 등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은 36%를 기록했다. 3%대인 한국은 물론 미국·프랑스·영국·일본 등 웬만한 선진국보다 월등히 높다. 전력 설비규모는 44GW(기가와트). 대형 원자력 발전소 44기의 설비 규모다.

중앙일보 이노베이션랩은 2018년 12월4일부터 8일까지 독일 탈하임 솔라시티, 말비어발트, 프라이부르크 등을 둘러보며 취재했다.

전력생산 중 신재생에너지 비중 계획

2025년
40~45%
2050년
80%

35~40%증가

※ 출처 : 독일 경제에너지부(BMWi)

에어컨을 사지 않는 독일

독일의 에너지 정책 방향은 명확하다. 석탄·석유·원자력 등 기존 에너지원 대신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일명 ‘에너지전환(Energiewende)’이다. 2000년 신재생에너지 법(EEG)을 만든 이래 20년 가량 일관된 기조다. 독일은 전체 전력 생산 가운데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025년까지 40~45%, 2050년엔 8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독일은 왜 신재생에너지로 산업 전체의 기수를 돌려버린 걸까. 독일태양광협회(BSW) 이사 올리버 베켈은 “독일인들은 기본적으로 ‘에너지 절약정신(energy -conscious)’과 환경보호 의식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물이든 전기든 과다하게 사용하는 것을 금기시한다. 개인 주택은 물론 상점에도 에어컨이 없는 경우가 많다. 자연풍이나 지하수를 활용한 서늘한 공기순환 장치, 선풍기로 여름 더위를 이겨낸다. 독일을 찾은 관광객은 4성급 이상 호텔에 자연친화적 공기 순환 장치와 선풍기만 설치된 것을 보고 놀라기도 한다.

이같은 사회적 인식 덕분에 강력한 신재생에너지 전환 정책에도 큰 반대가 없다. 심지어 독일 여론조사에서는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면서 전기요금을 더 부담할 의사가 있다”는 의견이 절반을 넘는다.

‘지금보다 미래’ 국민은 안전을 택했다

독일에서도 원자력 발전업계의 반발은 컸다. 2022년까지 기존 원전 가동을 중단한다는 계획 때문이다. 이 반발을 잠재운 것도 여론의 힘이었다.

독일 국민은 1979년 미국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 1986년 러시아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보면서 ‘사고 가능성이 높든 낮든, 원전은 미래 세대를 위해 지속가능한 에너지원은 아니다’라는 인식을 갖게 됐다. 특히 체르노빌 사고는 직접 피해를 경험했다. 약 2년 동안 체르노빌 근접 지역 독일 주민은 신선한 샐러드와 유제품 등을 마음대로 먹지 못 했다. 난데없이 통조림 소비가 폭등하기도 했다.

결정적인 한 방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였다.
‘최고의 기술 선진국’ 일본에서 일어난 참사를 목격한 독일인은 ‘신재생에너지로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이뤘다. 독일은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옳은 선택 (the right choices)’라고 홍보하고 있다. 독일에서 10년을 거주하며 독일 환경법을 전공한 박근우 박사는 “현재 독일에서 원전 중심의 에너지 정책을 주장하는 순수한 ‘원전론자’는 설 자리가 없다” 고 말한다.

태양광은 ‘연료’가 아닌 ‘기술’

신재생에너지의 양대 축은 태양광과 풍력이다. 특히 독일 알렌스바흐(Allensbach) 연구소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0%는 태양광을 선호 에너지로 꼽았다. 2018년 상반기 발전 비중만 보면 풍력(육상)이 14.7%로 태양광(7.3%)보다 앞서지만 성장 속도는 태양광이 가장 빠르다. 이유가 뭘까.

글로벌 태양광 솔루션 기업인 한화큐셀의 이안 클로버 커뮤니케이션 책임자는 “태양광 에너지는 ‘연료(fuel)’가 아니라 ‘기술 (technology)’이다. 기술은 갈수록 발전하고 갈수록 싸진다.”라고 말했다. 큐셀은 태양전지와 모듈을 만드는 독일 기업이었는데 2012년 한화그룹이 인수했다. 한화큐셀은 신재생에너지 강국인 독일에서 2018년 태양광 모듈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이미 2017년 한국·미국·일본 태양광 모듈 시장에서도 선두에 올랐다.

이안 클로버는 태양광 발전을 휴대전화에 비교한다. “휴대전화는 20년 전 크기나 두께가 지금의 2~3배였다. 가격은 10배나 비싼데다 성능은 지금의 ‘스마트폰’과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태양광 발전 기술은 휴대전화와 비슷한 궤적을 밟고 있다. 전 세계와 한국이 해야 할 일은 원자력이냐 태양광이냐 같은 논쟁이 아니다. 정부는 기업이 글로벌 무대에서 기술 경쟁을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태양을 선택한 나라, 독일을 가다

태양을 선택한 나라, 독일을 가다

CHAPTER 2.

오해와 우려, 이렇게 극복했다

2016년 독일의 에너지원별 균등화발전비용

육상풍력
0.09
0.05
태양광
0.09
0.06
석탄
0.11
0.066
가스
0.12
0.07
원자력
0.13
0.064

※ kWh(킬로와트시)당 유로

※ 설비투자비용, 발전시설 가동시간 등에 따라
막대그래프 아래칸은 최저산출비용, 윗칸은 최고산출비용

※ 출처 : 아고라에네르기벤데

태양광 가격, 드디어 낮아졌다

태양광 발전은 오랫동안 ‘경제성이 없다’고 폄하됐다. 그래서 ‘대체’에너지원 정도로 여겨졌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그 ‘대체’가 ‘대세’가 돼 가고 있다. 기술 발전과 규모의 경제 덕분에 태양광 발전 비용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독일 에너지 전환 정책 연구기관인 ‘아고라 에네르기벤데’에 따르면 2016년 독일 태양광의 균등화발전비용은 kWh(킬로와트시·1시간당 전력량)당 0.06~0.09유로다. 원자력(0.064~0.13유로), 석탄 (0.066~0.11유로), 가스(0.07~0.12유로)보다 저렴하다.

균등화발전비용(LCOE·Levelized Cost of Electricity)이란 발전설비 설치, 유지, 폐기 등 전력 생산 및 폐기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비용을 고려해 산출한 값으로 발전원의 전력생산 비용을 비교하는 국제 공인 지표다.

‘솔라파워 유럽’에 따르면 1kWp(킬로와트피크·가장 강한 태양빛이 내리쬘 때 얻을 수 있는 전력의 양)당 태양광 발전설비 비용은 2006년 평균 5유로 (약 6400원)이었지만 2016년 1.27유로(약 1620원)로 10년 사이 75%나 떨어졌다.

지붕과 창문, 길바닥이 발전소로

‘태양광 발전은 국토가 광활한 나라에나 적합하다’, ‘산과 들을 다 깎아서 태양광을 설치할 수는 없다’는 건 편견이다.

독일 국토 면적은 약 35만㎢로 일본(약 37만㎢)보다 작다. 이안 클로버는 “태양광은 주위 환경에 얼마든지 맞출 수 있는 굉장히 유연한 발전”이라고 설명한다. 지붕, 선박, 자동차, 건물 옥상과 지붕과 측면 등 어디든 설치할 수 있다. 독일에서는 수많은 고속 도로 주변의 자투리 땅을 이용한 긴 띠 모양의 태양광 발전소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네덜란드나 한국 등 호수나 저수지가 많은 나라에는 수상 태양광 설치가 확산되고 있다.

아이디어와 기술은 점점 더 혁신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투명한 태양광 모듈을 활용하면 창문이 미니 발전소가 된다. 아예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 위에 태양광 모듈을 깔아 발전소로 활용하기도 한다.

일각에선 수명이 다한 모듈이 폐기물로 쌓여 되레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미 유럽에선 태양광 모듈 재활용이 자리잡혔다. 유럽연합(EU)은 2012년부터 태양광 모듈을 의무적으로 재활용하도록 했고, 2018년엔 ‘폐전기전자제품(WEEE·Waste Electrical and Electronic Equipment)’ 처리 지침을 개정해 재활용 비중을 크게 높였다.

이에 따라 생산자는 폐기된 태양광 모듈의 85%를 회수하고 그 중 80%는 재활용 공정을 거쳐 새로운 모듈로 재사용해야 한다. 독일도 마찬가지다. 한화큐셀 독일 R&D센터의 막시밀리안 슈레이드 기술지원 책임자는 “태양광 모듈은 유리·알루미늄·실리콘·구리 등으로 이뤄져 거의 대부분 재활용이 가능하다”라며 “한화큐셀도 ‘take-e-way’라는 업체와 함께 재활용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가 와도 웃는 태양광 발전

독일은 습하고 우중충한 겨울이 길기로 유명한 나라다. 일사량도 한국보다 적다. 우울한 겨울 때문에 저명한 철학자 들이 많이 나왔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12월에 방문한 독일 동부 브란덴부르크주의 ‘말비어발트(Maulbeerwalde)’ 태양광 발전소가 딱 그랬다. 총 3만4400개의 태양광 모듈 위로 겨울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비가 오면 효율이 떨어지지만 전기를 만들지 못하는 건 아니다. 맑은 날과 비교해 약 40~60% 정도의 효율을 낸다.

태양광 발전에 있어 비 오는 날의 이점도 존재한다. 발전소 유지관리 책임자인 세바스티앙 파울은 “25도 정도 기울어진 모듈 위로 빗물이 떨어져 흐르면서 먼지 등 불순물이 씻겨나간다. 화학 클리너는 필요 없다”고 말했다.

일단 설비를 구축하면 유지 관리가 쉽다는 게 태양광의 장점 이다. 태양광 모듈은 최소 25년 성능을 유지한다. 1980년대에 설치한 모듈이 아직도 70% 이상 성능을 발휘한다. 청소도 간단하다. 빗물을 이용할 수도 있고, 모듈 자체에 미세하고 강한 진동 장치를 설치해 먼지를 제거하기도 한다. 사막에서는 특수 코팅으로 먼지를 방지하고 청소 로봇을 쓰기도 한다.

무엇보다 에너지 저장기술이 태양광 발전의 새 국면을 열었다. 해가 쨍쨍한 날 생산한 전기를 에너지저장시스템(ESS·Energy Storage System)에 저장해 두고 흐린 날 꺼내 쓸 수 있다.

독일태양광협회 이사 올리버 베켈은 “최근 태양광 산업의 화두는 ‘저장설비’와 ‘자가소비’다. 과거에는 정부 보조금을 받아 태양광 발전설비를 설치하고 여기서 얻는 전력 수익에 만족했다면, 지금은 지하실 등에 저장장치를 설치해 놓고 자신들이 쓸 전기를 직접 만든다”고 말했다.

독일은 태양광 발전 확산을 위해 1980년대 전력산업을 민영화했다. 최근엔 30kWp 이하의 소용량 가정용 태양광발전의 경우 저장장치를 설치해 자가소비를 유도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태양이 모두에게 평등한 것처럼 법으로 에너지 민주화, 에너지 자립을 보장했다.








태양을 선택한 나라, 독일을 가다

CHAPTER 3.

‘태양의 도시’ 프라이부르크

CHAPTER 3.

‘태양의 도시’ 프라이부르크

독일 남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의 도시 프라이부르크(Freiburg) 는 태양광이 시민들의 삶 속에 뿌리를 내렸다. 프라이부르크는 ‘검은 숲’이란 별칭을 지닌 슈바르츠발트 산맥 인근에 자리잡은 도시다.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서 어린 남매가 버려진 바로 그 숲이다. 이 곳 농부들은 긴 겨울 동안 각종 목공예품을 만들어 팔았다. 80년대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뻐꾸기 시계’도 원래 이 지역 특산품이다.

2018년에 문을 연 프라이부르크시 신 시청사의 모습. 건물 외벽에 880개의 태양광 모듈을 부착해 전기는 물론 냉방과 난방에 필요한 에너지까지 자체 조달하는 최첨단 ‘그린 빌딩’이다. 나무 등 천연 건축 자재와 친환경 에너지 시스템을 갖춘 건물에는 840명의 직원이 근무한다.

프라이부르크시 보봉 마을에 있는 주상복합건물 ‘태양의 배(The Sun Ship)’로, 건축가 롤프 디쉬가 설계했다. 단열·환기장치로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고 사람들이 거주하는 위층 지붕에 태양광 모듈을 설치해 전기를 생산한다.

하이델베르크대학, 쾰른대학, 뮌헨대학과 함께 독일을 대표하는 프라이부르크 대학 모습. 세계적인 철학자 막스 베버, 마르틴 하이데거, 에드문트 후세, 프리드리히 하이예크 등이 배우거나 교편을 잡은 곳이다. 오른쪽이 유명한 철학관이다.

아름다운 시청사를 구경하세요

인구 23만 명의 프라이부르크는 세계적인 환경도시다. 1992년 독일 환경수도로 지정됐고 2010년엔 ‘에너지보호 수도’, 2012년엔 ‘가장 지속가능한 도시’, 2018년엔 ‘에너지절약 수도(Climate active City)’로 선정됐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환경 보호, 에너지 절약, 탄소 배출 최소화를 실천하고 있다.

12월 8일 토요일, 중앙역에 내리니 가장 먼저 푸른색 다리가 눈에 들어온다. 자동차 진입이 금지된 다리 위로 젊은 부부가 유모차를 몰며 한가롭게 거닐고 있다. 주변으로 시민들이 앉아서 책을 보고 음악을 들으며 평화로운 한 때를 보내고 있었다.

프라이부르크의 주요 교통수단은 트램과 자전거다. 자동차의 시내 진입을 대폭 제한하는 대신 시내 구석구석 트램과 자전거 도로를 연결했다. 굉음을 내며 달리는 자동차가 없는 시내는 활력이 넘친다. 마르틴 하이데거와 그의 연인 한나 아렌트, 막스 베버 등 저명한 철학자들을 배출한 명문 프라이부르크 대학을 포함해 5개 대학이 둥지를 튼 거리마다 학생들이 경쾌한 발걸음을 옮긴다.

프라이부르크의 또 다른 별명은 ‘태양의 도시’다. 관공서와 도서관·주차장·축구장 등 공공시설은 물론 일반 주택과 상점들까지 태양광 발전으로 전력 수요의 상당부분을 충당한다. 2018년 문을 연 프라이부르크 신 시청사 건물은 ‘태양의 도시’의 랜드마크다. 원형 경기장 형태의 7층 짜리 시청사는 외벽 전체에 탈부착이 가능한 최신 태양광 모듈을 달았다. 필요한 에너지는 모두 자체 생산하는 ‘에너지 제로 건물’이다.

시청은 외벽 전체를 최신 태양광 모듈로 장식했다.












프라이부르크시 보봉 마을에 위치한 태양광 발전 주택단지 모습. 지붕 전체가 태양광 모듈로 돼 있어 자체 생산한 에너지를 가정에서 쓰고, 남는 에너지를 판매까지 하는 플러스에너지 하우스, 액티브 하우스로 유명하다.

보봉 마을은 프랑스군이 주둔하다 1992년 독일이 통일되면서 주민들이 스스로 조합을 만들어 건설한 마을이다. 노란색 건물은 과거 프랑스군들이 카지노를 즐기던 장소였지만 지금은 친숙한 ‘동네식당’이 됐다. 옥상에 태양광 모듈이 설치돼 전기를 자체 생산한다.

보봉 마을에 있는 태양광 주차장. 보봉 마을을 포함해 프라이부르크시 대부분의 건물에는 태양광 발전 시설이 설치돼 있다. 주차장 앞에는 776개의 모듈이 만들어내는 전력량이 연간 8만 kWh(킬로와트시)이며, 38톤의 이산화탄소 감축 효과를 낸다는 표지판이 있다.

‘+’, ‘-’, ‘0’…어떤 집에서 사시나요

인구 5000여명의 ‘보봉(Vauban)’마을은 프라이부르크에서도 가장 유명한 친환경 지역이다. 철저하게 ‘에너지 절약’과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라는 가치를 지킨다.

마을 중심부는 일부 도로 외에 자동차 진입을 막았다. 보봉 마을에서 구도심까지 갈 때 “차를 타면 30분, 트램을 타면 15분, 자전거를 타면 10분”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한국 ‘쏘카’의 모델이 된 공유차량 업체가 처음 등장한 곳도 보봉이다.

1994년 이곳에 세워진 '헬리오트롭(Heliotrop)'이란 원통형 태양광 주택은 햇빛을 따라 회전하며 자체 수요량의 5배나 되는 전기를 만든다.

보봉 마을 건물들은 대부분 ‘패시브 하우스’(passive house)다. 단열 시스템으로 에너지 사용량을 최소화한 집이다. 프라이부르크 신 시청사처럼 필요한 에너지를 자체 조달하는 ‘에너지 제로 하우스’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자체 생산한 전기를 팔아 연간 500만원 안팎의 소득을 올리는 ‘액티브 하우스(active house)’도 생겨나고 있다. 이곳에서 태양광 발전은 미래에 달성해야 할 기술이 아니라, 나와 내 가족이 매일 접하고 사용하며 살고 있는 친숙한 에너지다.

프라이부르크시 전경. 왼쪽 첨탑이 유명한 프라이부르크 대성당이다. 인구 22만5000명의 이 도시는 40%가 숲이며 50%가 환경보호 지구로 지정돼 있다. 연간 햇빛이 내리쬐는 시간은 2000시간으로 한국보다 적지만 태양광 발전 기술로 에너지의 상당부분을 조달하고 있다.

프라이부르크시 구도심에 자리잡은 ‘프라이부르크 대학도서관’으로, 지붕에 2000㎡ 규모의 태양광 발전 시설을 설치해 24시간 운영된다. 프라이부르크시의 주요 교통수단은 트램(노면전차)과 자전거다. 주민들은 차 없는 거리에서 마음 놓고 걸어다니며 친환경 생활에 녹아든다.

프라이부르크 중앙역에 내리면 가장 먼저 보이는 비빌리 다리(Wiwili Bridge). 푸른 빛깔 때문에 ‘블루 브릿지’로 더 유명하다. 1970년대까지 자동차가 다녔지만 90년대 자동차와 오토바이 통행이 금지되고 자전거와 보행자를 위한 장소로 변신했다.

잘 살기 위해 ‘환경’을 선택한 사람들

프라이부르크가 어느 날 갑자기 ‘환경 수도’가 된 것은 아니다. 나무가 울창했던 ‘숲’ 지대가 1970년대 산성비로 파괴되는 것을 본 시민들은 각성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석유 파동 때 프라이부르크시는 독일에서 가장 먼저 자가용을 억제했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터지자 독일 지방정부 중 최초로 환경보호과를 설치했고 연방 정부보다 14년이나 앞서 ‘탈원전’을 시의회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최근 프라이부르크시는 2018년 3대 현안을 발표했다.
▷보봉과 리젤펠트에 이은 제3의 환경마을 건설 ▷신호와 교차로가 없는 자전거 고속도로 설립 ▷ 친환경 축구장 건설이다. 독일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이자, 연간 300만명 이상이 찾아오는 관광도시로 빛나는 프라이부르크. 환경에 대한 확고한 시민의식과 일관된 신재생에너지 전환 정책이 어우러진 결과다.

독일의 에너지전환은 쉽게 이룬 것이 아니다. 장기적인 국가 계획과 국민 인식 개선을 위한 정보 제공, 치열한 토론의 결과다. 독일에서는 여전히 대학입시 등 각종 에세이 주제로 신재생에너지가 등장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넘어 안전한 환경, 지속가능한 에너지 발전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비로소 오늘의 ‘태양광 경제강국’ 독일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