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학 제도의 변경은 전국민적인 관심사다. 대학입학 제도가 조금만 바뀌어도 초·중·고 교육에 커다란 변화가 생긴다. 문재인 정부는 8월 10일 절대평가를 확대하는 수능 개편안을 발표했다. 개편안은 커다란 찬반 논란을 일으켰고, 정부는 1년 더 숙고한 뒤 개편안을 확정하기로 했다. 개편 논란으로 교육계가 요동치는 동안 청담러닝은 예상과 달리 차분했다. 절대평가라는 개편안이 발표됐을 땐 “이미 예상했던 일”이라며 반기는 분위기였다. 결정이 1년 미뤄졌을 때도 “공교육이 예전처럼 암기식 교육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동요하지 않았다.
청담어학원의 헤드쿼터인 청담러닝 본사 직원은 약 200여 명. 더 경쟁력 있는 교육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고민한다. 매년 1~3차례 정도는 교육 방침과 철학에 대해 치열한 내부 토의를 한다.
이번 여름 청담러닝은 수차례 회의를 한 뒤 ‘부모 세대와는 색다른 교육’이라는 발제문을 채택했다. ‘영어 프로젝트 템플릿을 통한 지식의 고도화와 창의 사고력 키우기’ ‘비판적 사고력과 언어 구사력의 상승 작용’ ‘비전 형성에
기여하는 스토리텔링’ 등 발제문은 실제 커리큘럼으로 연결된다.
단순화시키면 창의, 소통, 비전이라는 세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이 발제문은 세미나를 통해 청담러닝 조직 전체로 공유된다. 보통의 학원과는 완전히 다른 행보다.
“미래 인재 누구냐” 두고 치열한 토의
‘부모 세대와 다른 교육’ 발제문 채택
수능 개편안 논란 땐 차분한 분위기
사용하는 사람은 3억4000만 명
영어를 사용
영어 수업은 말하기/쓰기 중심 전환
영어로 진행
V1 수업 들어 보니
떠들고, 공감하고, 만들고… 대학 문학동아리 느낌
창의, 소통, 비전이라는 키워드는 그저 구호에 머무르는 게 아니다. 청담어학원 알바트로스 레벨(최상위 클래스의 아래 수준)의 V1 수업은 매주 금요일 오후 7~10시 세 시간씩 이어진다. 10명 안팎의 1~2학년 학생으로 구성된 이 클래스에서는 3개월간 책 두 권을 읽었다. 『Inside out & Back again』에 이어 『Elijah of Buxton』 모두 뉴베리상을 수상한 수준 높은 문학 서적이다. 학생은 이번 주 300쪽 분량의 『Elijah of Buxton』 중 약 60쪽을 읽고 왔다. 수업 분위기는 마치 대학교 문학동아리의 강독회 같다. 소설의 플롯에 대해 이야기하고, 주인공의 경험과 자신의 경험을 연결시키며, 서로 공감하고 소설을 가슴 깊이 받아들인다. “주인공처럼 믿었던 누군가에게 안 좋은 일을 당한 경험을 탭에 그려 볼까.” 감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첨단 기기와 교육방법론도 활용된다. 선생님의 제안에 학생들이 익숙한 듯 탭을 조작한다. 그림을 설명하다 보니 쉽게 말하기 힘든 내밀한 개인적 경험담이 쏟아지며 수업에 열기가 돈다.
소설과 자신의 이야기 연결하며 공감
3명씩 짝 이뤄 대본 쓰고 영상 제작까지
다양한 활동 하며 문학작품에 감동
강사 채드 베요프스키는 “수업 목표는 학생 스스로 자신의 스토리텔링을 하는 것이다. 서로 개인적 이야기를 하면서 공감하는 것도 수업의 일부”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만드는 건 소설을 읽으며 시작된다. 이야기 구조를 파악하고 주인공과 자신을 연결하다 보면 자연스레 스토리텔링 능력이 향상된다”고 덧붙였다.
그 다음 주 학생들은 세 명씩 세 팀을 이뤄 대본을 만들고 탭을 활용해 미니 드라마를 찍었다. 기획안 구성과 발표, 스크립트 작성이 밀도 있게 이어졌다. 벌레와 이야기하는 판타지, 친구의 살인사건을 다룬 추리물, 귀신이 등장하는 공포 드라마가 뚝딱뚝딱 제작됐다. 촬영과 편집은 탭을 통해 모두 이뤄진다. 기획, 연기, 연출, 편집 모두 학생들 몫이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이 영어로 이뤄진다. 집에 돌아가면 탭을
활용해 작문, 스피킹 과제를 수행한다. 이는 온라인으로 제출되며 온라인 학습을 담당하는 e-튜터가 이를 평가하고 피드백한다.
수업을 듣는 김수연양은 “책을 읽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으면 더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다. 논술과 에세이 실력도 자연스레 좋아졌다. V1 클래스는 학원 가는 것 같지 않다”며 웃었다.
“아이가 청담어학원에 가는 걸 좋아한다. 영어로 대화도 더 잘하게 된 것 같다. 하지만 문법을 더 가르쳐 달라.” 청담어학원에는 매일같이 이 같은 학부모의 문의가 빗발친다. 학교 시험을 잘볼 수 있게 족집게 문법 강의를 늘려 달라는 거다. 청담어학원은 꿈쩍하지 않는다. 문법 수업은 한 학기에 21시간으로 제한했다. 내신을 잘보기 위한 주입식 교육은 청담의 교육철학에 반하기 때문이다. 한 시간, 두 시간 야금야금 문법 수업이 늘어나다 보면 모든 게
무너진다는 게 김영화 청담러닝 대표의 ‘고집’이다. 한 직원은 “청담의 이상과 한국의 교육 현실이 싸우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청담어학원에 다니면서도 다른 영어학원을 동시에 수강하는 학생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청담은 앞으로 영어 면접을 볼 때 도움이 될 것 같고, 다른 학원은 내신 때문에 다닌다”는 거다.
수강생이 청담을 등지는 가장 큰 이유 역시 내신 문제다. 이 같은 현상은 청담이 말로만 창의를 외치는 게 아니라 얼마나 깊고 철저하게 교육 방법론을 실천하는지 거꾸로 알려준다.
이은선 상무는 “KAIST는 2018년부터 영어로 면접을 본다. 수업도 85%를 영어로 진행한다. 한국 과학영재고는 수학과 과학 수업에서 영어 교재를 사용한다. 앞으로의 영어는 문법이 중요한 게 아니다. 실제로 영어를 이해하고, 말하고, 쓰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중·고교에서 평가도 수행평가가 늘어난다. 에세이를 잘 쓰고, 소통을 잘하고, 스스로에 대한 스토리를 만들고,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하는
인재를 점점 더 찾게 된다. 이는 거스를 수 없는 추세”라고 말했다.
중•고교 수행평가 점점 더 중요해져...
21세기 미래 인재 육성에 초점
언어로 사고력 키우는 ‘창의 공작소’
1998년 청담동 뒷골목의 작은 영어학원에서 출발했다. 20년이 흐른 지금은 단순한 어학원이 아니다. 생각하는 방법에 영어만큼이나 공을 들인다. 그림을 그리고, 영상을 만드는 공작소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유행하는 메이커스 운동(물건을 직접 만들며 창의성을 함양하는 교육 방식)을 실천하고 있다.
“학원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어떡하면 좋을까요”라고 물었다. 이은선 상무는 “그래서 공교육이 정말 중요합니다. 지금 공교육이 나아가는 방향이 시대적 흐름과 맞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3인3색 인터뷰
결국 모든 건 사람으로 시작해 사람으로 끝난다. 송문근 청담러닝 부사장, 김동우 학생,
채드 베요프스키 강사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청담어학원의 고민과 비전, 도전을 알 수 있다.
상대 설득할 수 있는 영어 중요” 송문근 (청담러닝 부사장)
송문근 부사장은 김영화 대표와 함께 청담러닝 커리큘럼의 뼈대를 만들었다. “예전엔 꽤 인기 많은 강사였다”고 말한 그는 인터뷰 도중 “5분만 설명하겠다”며 사무실에 걸린 칠판 앞으로 나가 강의를 하기도 했다.
독해만 하던 20~30년 전과 영어 수업이 완전히 다르다. “그땐 그게 맞았을 수 있다. 그때 우리에게는 영어로 된 서적을 읽고, 문물을 흡수하는 게 우선이었다. 문법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1990년대를 지나며 외국인과 직접 소통할 기회가 많아지며 리스닝이 중요해졌다.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소통과 표현이 중요한 세상이 된다. 영어는 이렇게 시대를 반영한다.”
커리큘럼을 만든 과정은. “처음엔 영어를 영어답게 가르치자는 게 목표였다. 읽기/듣기/말하기/쓰기를 아우르는 ESL에 집중했다. 2005년을 지나면서 언어는 결국 사고력이라는 문제의식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비판적인 사고력을 강조했다. 그 이후에 프로그램이 점점 세분화되고 다양화돼 지금에 이르렀다.”
한국 시장은 좁지 않나. “좁다기보다는 우리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는 사고력을 가르치는데, 여전히 시험에서는 독해만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과 일본은 말하기와 쓰기를 모두 평가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우리도 사고력과 표현력을 평가하는 영어시험으로 변해야 국가 경쟁력도 강화된다. 공교육도 과정 평가를 중시하는 방향으로는 흐름을 잡았지만 실제로 얼마나 실천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재미동포 억울한 사정 풀어줄래요” 김동우 (광장중 3년)
김동우군은 2012년인 초등학교 5학년부터 5년간 줄곧 청담어학원에 다니고 있다. EC3반(13단계 중 세 번째 레벨)에서 시작해 2016년부터 가장 수준 높은 마스터 클래스에서 공부한다. 해외에 머무른 경험이 없는데도 미국 드라마를 원어로 즐긴다. 친구를 모아 스스로 영어 토론 동아리를 만들 정도로 열정적이고 도전적이다. 장래 희망은 국제변호사. “억울한 일을 당한 재미동포를 돕고 싶다”는 게 그 이유다. 논리적이고 비판적 사고력을 바탕으로 뚜렷한 주관을 세우고,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표현하며 능동적으로 해법을 찾는 건 청담어학원이 추구하는 인재상이다.
영어 공부를 어떻게 했나. "어릴 땐 재미동포로부터 개인교습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선생님이 전부 원어민인 청담에서 더 생생한 영어 공부를 했다. 재미동포 선생님에게는 문법을 많이 배웠는데, 여기서는 스피킹 중심으로 배웠다. 학교 시험은 따로 준비하지 않아도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다. 토플은 120점 만점에 100점을 받았다."(미국 주요대 입학이 가능한 성적이다.)
청담에서 어떤 수업을 듣나. "소설을 읽고 공부하는 수업과 토론 수업 두 가지를 듣는다. 책을 읽은 수업에서는 뉴베리 수상작을 주로 읽는다. 토론 수업에서는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영국식 토론을 한다. 편을 나누고, 의제를 정하고, 돌아가면서 논증하고 설득한다. 대학교 수업을 먼저 경험하는 것 같다."
청담어학원 외에 따로 영어 공부를 하나. "친구들 5명과 영어 동아리 ‘디베이트 클럽’을 만들었다. 청담에서 경험한 다양한 수업과 활동이 동아리를 만들고 운영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장래 희망은. "재미동포가 많이 사는 미국 서부에서 국제변호사로 일하고 싶은데 학교는 동부의 하버드대에 가고 싶다. 그게 고민이다."
말하는 게 청담의 원칙” 채드 베요프스키 (강사)
“이걸 내가 고등학교 때 알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미국 명문대 하버드 출신인 채드 베요프스키는 청담어학원의 대표 강사다. 2006년 1년 동안 외국 생활을 경험하고 학비도 벌기 위해 한국에 왔다가 한국인 아내를 만났다.
‘당신 수업이 매우 특별했다’고 했더니 그는 “톱다운”이라고 했다. 큰 뼈대와 줄기는 청담어학원의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설명. 그는 청담 커리큘럼을 “디자인 싱킹”이라고 정의했다. 디자인 싱킹은 창의적 사고를 하는 방법론이다.
실제로 무엇인가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상상력과 창의력이 증폭된다는 것이다.
강사마다 가르치는 방식이 다를 텐데. “모든 청담의 선생님에겐 두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는 말하지 말고 보여주라는 것이다. 미디어를 적극 활용한다. 두 번째는 25/75다. 선생님은 25%만 말하고, 학생이 75%를 말하도록 대화를 이끌며 수업한다.”
창의와 외국어를 함께 가르치는 방법이 어떤가. “이곳은 교육 방법이 정확하게 정해져 있고, 독특한 커리큘럼이 준비돼 있다. 내 역할을 학생의 이야기를 듣고 부족한 점을 알아보는 것이다.”
모국어는 너무 편해서 생각이 멈추곤 한다. “외국어로 배우기에 더 분석적이고,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도 있다. 내가 고등학교 때 지금 여기서 가르치는 것을 배웠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청담어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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